우연한 기회에 ‘한일성신학생통신사’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 프로그램은 ‘한-일 간 문화교류, 경제협력은
확대되고 있으나 역사 문제를 둘러싼 마찰은 여전히 첨예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생긴 기획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일본의 ‘국민 정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일본 정부의 정치적 행보를 정말 싫어한다. 평소 그들에게 관심도 없고, 접점도 없었다. 하지만 국제사회 내 일본 정부의 태도와 한-일 문제에 대한 일본
대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무엇보다 공짜로 해외를 다녀올 수 있다는 점에 끌려 프로그램에 신청했다..일정 중에 ‘일본 학생들과의 토론’이 있다. 토론회의
주제는 크게 원자폭탄 피해 문제(구체적인 사항으로 전후 행정 및 한국인 피폭자 보상문제)와 원자력발전소 개발 이 두 가지인데, 그래서 요즘에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원전 개발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있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많이 알게 되었다. 군대에 있을 때 에너지산업이 궁금해서 관련된 교양 서적을 두루 봤는데, 그 때 읽었던 책을 하나 다시 집었다.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사회과학이나 정치 분야에서 판단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여전히 세계에는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을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것도 똑같다. 나는 추가적인 원전 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번 기회에 책에
대한 감상도 쓸 겸 원전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그 근거를 적어보려고 한다.1. 과연 안전한가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자들의 가장 든든한 논리는 ‘원자력은
비교적 가장 안전하다’이다. 원자력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 논리는 아주 견고했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반 세기도 되지 않아 원자력 때문에 지구가 지옥이 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체르노빌 한 번도 모자라 후쿠시마에서까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높은 진입 장벽 탓에 과학지식을 가지고 나누긴 어렵다. 우리는 역사적인 반례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 방법은 전문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다.라스무센 연구팀은 1975년 작성한 보고서 ‘원자로의 안전성 연구보고서(The Reactor Safety Study)’에서
“원자로는 절대 안전하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원자로가 방사능 유출 없는 노심용융 사고를 일으킬 확률은 1만
년 가동에 1차례, 방사능이 소량 유출되는 노심용융 사고는 100만 년에 1차례, 대량
유출되는 괴멸적 사고는 10억 년에 1차례 일어난다고 추산했다. 원전이 자동차나 비행기 심지어 허리케인, 낙뢰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나온 지 4년 후인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 섬에 있는 원전에서는 노심용융이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보고서가 100만 년에 한 차례 일어날 것이라고 본 사고가 미국이
원전 가동을 시작한 지 20년여 년 만에 발생한 것이다.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비슷한 패턴으로 발생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 태풍 등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 탓에 ‘안전과
안심’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라다. 그렇기에 재화 및 서비스를
공급하는 정부가 안전 조치를 취한 것만으로는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수요자가 인정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가가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원전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일본은 원자력 발전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진행했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을 많은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원전의 비상정지는 운전 7000시간 당 0.07회로 놀랄 만큼 적다. 또 원자로 압력용기는 일본의 한 제조회사가
세계 시장의 80퍼센트를 점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운전의
신규 건설이 진척되면서, 각국은 치열한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도 저렴함을 무기로 수출을 꾀하고 있다. 세계 제일의 안전한 원전을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세계의 공헌하는 길이다”_ 도요타 아리쓰네 ‘일본의
원전 기술이 세계를 바꾼다’, 2010그러나 현실과 이론은 달랐다.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는
심각한 사고가 10만 년에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할 만큼 온갖 비상수단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수단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사고를 피하진 못했다.2. 그렇다면 효율적인가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무작정 ‘원자력은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원자력 개발을
찬성하는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찬성
측의 주된 논거였던 ‘안전’이 빠진 자리에 ‘효율성’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이렇게 모아진다.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포기할 순 없다.’ ‘비용적 측면에서 다른 에너지 개발에 비해 훨씬 절약된다.’ 과연 그럴까일단, 원자력과 타 에너지의 발전 비용을 비교했을 때 전자가 더 저렴하므로 효율성도 더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비교대상이 틀렸다. 효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발전 비용과 발전 사후 처리 비용(핵 폐기물 처리비용 및 사고 예방, 수습 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에너지
산업의 목적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가, 전 지구의 생존에 있기 때문이다.원자력의 경우, 발전
비용은 눈으로 셀 수 있지만 그 외의 비용은 우리가 가늠할 수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핵폐기물 매장’ 방식은 불완전한 처리 방법이기에 언제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고, 사고 후 처리 비용도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 정확한 비용을 계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 국민들의 피해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또한 여전히 국민들은
체르노빌에 접근할 수 없으며 국가도 체르노빌을 이용할 수가 없다. 지금도 피해는 진행 중인 것이다.3.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개발의 역사는 15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원의 가채연수가 50여 년 안팎임을 볼 때, 우리는 지구가 60억 년 동안 품고 있던 자원을 200여년 만에 다 써버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너무 이기적이다. 선대는 차치해 두어도 후대를 생각하면 가혹하리만큼 본인들만 생각하고 있다. 현재 가장 잘 ‘쓰고’ 있는 원자력의 성질을 알면 더 그렇다. 원자력 발전은 필연적으로
방사능을 방출하는데, 초기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부른다.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온 방사능 물질은 호흡이나 음식 섭취를 통해서 흡수되는데,
생물학적/물리적 반감기가 열 번 이상 지날 때까지 우리 몸을 피폭시킨다.
주목하고 싶은 건 물리적 반감기다. 물리적 반감기는 방사능 물질 자체의 방사선 방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을 말한다. 요오드131의 경우 8일, 스트론듐90과 세슘137은 30여 년이 지나야 그 강도가 반으로 줄고 플루토늄의 경우는 어쩌면 영원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방사성 물질들은 태워 없앨 수도, 화학 처리할 수도 없다. 지금도 지구 곳곳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존재한다. 사실 우리
세대가 땅 속에 그냥 ‘묻은’ 핵 폐기물은 동의 없이 내다버린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원자력 발전을 옹호해야만 하는가- 현실을 무시한 채 ‘원자력 발전을 중지하라’고
외치려는 건 아니다. 일단 원자력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단계별로 실천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의 비율을
점점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원전의 수를 기존보다 10개 이상의 늘리려고 하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효율’과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한 대비’다. 정부에게 논리의 이면에 대해 묻고
싶다. 개발에 대한 강박인지, 표심을 위한 정치적 전략인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도쿄 현지 특파원이 생생하게 취재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체와 감춰진 원인들
잃어바린 후쿠시마의 봄 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시점부터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연이어 폭발한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일본인들 삶의 변화까지 기록한 책이다. 한겨레신문의 도쿄 특파원인 저자가 대지진 당시 몸으로 겪은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왜 일본이 체르노빌 사고 이후 가장 참혹한 핵 참사를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심층 취재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가 아닌 민간회사(도쿄전력)가 원전산업을 주도한 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감춰진 실상과 그 원인을 복기한다. 저자는 원전 회사들이 원전 머니 로 정계, 관료, 학계, 언론을 매수했으며, 때문에 그들이 민간 원전회사들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운영에 눈 감고 비호까지 해 주었다고 말한다. 전력회사 임원들은 자민당의 정치자금단체에 모두 3547만 엔의 개인헌금을 냈으며, 아사히신문은 1974년 광고를 위해 원전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고 피해 지역 주민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이 탈원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고, 오히려 원전을 늘려가고 있는 중국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살핀다.
1장.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M 9.0 대지진의 쓰나미
스테이션 블랙아웃
원전에서 폭발이 일어나다
확대되는 피난구역
2장. 방사능, 방사선, 생명
폴로늄210 테러 사건
우라늄 1밀리그램이 핵분열을 일으킬 때
원시 우주를 재현하는 핵분열
최대한 피해야 할 방사선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3장. 일본 절반이 사라질 뻔했다
눈앞에 닥친 ‘차이나 신드롬’
토양오염, 체르노빌을 뛰어넘다
사고등급, 레벨 7로 상향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죽음의 바다
방사능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4장. 10년 뒤가 두려운 사람들
바람에 맡겨진 운명
원전사고의 첫 번째 희생자들
원전 난민 11만 명
원전 별거, 원전 이혼
내부피폭을 막아라
공급자와 소비자의 엇갈리는 기대
자갈, 나무, 지렁이도 오염됐다
도쿄는 무사한가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5장. 어리석은 인간, 오만한 인간
센다이 지진 1000년 주기설
25미터를 깎아 낮춘 원전터
위험 지적됐던 마크1 원자로
가시와자키카리와 원전사고의 경고
은폐된 사고들
원전 머니에 길들여진 정-관-학-언론계
6장. 원전은 과연 안전한가
원전사고 확률, 10억 년에 한 번
기계 그리고 인간의 한계
후쿠시마 원전의 소방차 1대
체르노빌의 비극
안전하다면, 수도에 원전을
원전 집시
10만 년간 관리해야 할 죽음의 재
원전,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
7장. 원전 그림자에 핵무기가 보인다
도쿄만에 수장된 입자가속기
나카소네, 원자력 예산을 따내다
비핵 3원칙은 난센스다
핵개발 능력을 보유하라
플루토늄을 대량 보유한 일본
핵연료 사이클의 비싼 대가
8장. 비현실적인 몽상가들
하마오카 원전을 멈춰 세우다
원전의 경제성이 의심스럽다
태양광, 풍력으로 달려가는 손정의
탈원전이 넘어야 할 벽
중국의 길, 독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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