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저자가 목공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 그리고 목공을 하면서 인문학의 스며듬을 기록한 글이다. 저자의 솔직한 삶의 기록, 쓰라림, 아쉬움들이 목공과 중국인문고전과 어울어져 맛난 향기를 낸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에, 굳이 가르치려고 하는 책보다도 거부감없이 다가오며, 오히려 그런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았는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행하면서도 뚜렷이 알지 못하며 익히고서도 자세히 살피지 않는지라 죽을 때까지 따라가면서도 그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맹자, 진심편 루터테이블을 사용하다 상처를 입은 저자의 이야기를, 맹자의 글속에서 그 진리를 찾아내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 과거들이 생각났다. 남앞에서 모른다는게 그렇게 창피했는지, 뚜렷이 알지 못하고, 자세히 살피지 않고 행했던 많은 일들, 그저 시류에 따라, 유행에 따라 아무생각없이 쫓기만 했던 삶들이 지나간다. 어쩌면 난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 시간을 배우고 익히는 것 보다는 빠른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 같다.급한 성격때문일 수도 있고, 남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혼자서 해결하고자 하는 아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난 먼 미래에 대해 환상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될 꿈만 꾸었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한 번의 대패질로는 매끈한 나무의 면을 얻을 수 없건만 하루의 삶으로 미래가 그려지기를 바랐다. 지금 이순간이 한 번의 대패질, 오늘 하루가 또 한 번의 대패질, 그렇게 대패질을 하고 싶다." 일상의 힘을 무시할 때가 많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로또를 사는 맘처럼, 갑자기 내 일의 전문가가 되고, 언어를 갑자기 익혀버리는 환상을 쫓는 맘이 가득한 것은 인지상정이다.매일 쫓는 가벼운 쾌락에 일상의 대패질을 무시할 때가 많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매일 쓰기, 매일 읽기, 매일 생각하기, 매일 가족과 시간보내기등 그 매일이라는 것을 핑계를 대면서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루고 있는 모습이 투명하게 비쳐진다.고전의 힘이 놀라운 이유가, 나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의모습, 이 인문학의 힘을 빌려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목공이라는 일에도 인문학을 연결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게 된 것이다.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떨치지 않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을 상대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 앞에서 몸을 낮춘다. 이것을 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쓰는 길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의 지고함과 필적하는 일이라고 한다."- 도덕경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고 손자병법에서 밝히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감정싸움과 알력싸움속에서 이기려고 아둥바둥하는 하며 피폐해지고 지쳐버릴 때가 많은데, 이 도독경의 글은 인간의 최고의 경지를 말해준다. 어떻게라고 하는 방법론은 나열되어 있지 않지만 그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등산처럼 다양한 길로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인간 개개인마다 갖춘 역량과 천성이 다르니 말이다. 도덕경은 인간의 다름을 인간의 같음을 동시에 말해주는 인문학서임에 틀림없다. 목공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통해서 인문학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저자의 삶을 반성하면서 독자의 삶도 자신과 같지 않느냐며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다.
인문학자가 목공소로 간 이유는?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공방에서 목수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언가 사연이 있겠구나 하며 의문을 갖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일 것이다. 사회 통념상 인문학자와 목수는 분명 어색해 보이는 조합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임병희는 그 어색해 보이는 두 세계의 접점에서 살고 있다. 촉망받는 인문학자였던 그가 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향한 곳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강단도, 연구실도 아닌 공방(工房)이었다. 그는 1년여 공방에서 목공 수업을 받은 후 ‘나무와 늘보’라는 공방에서 가구를 만드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는 사람들의 예상과 한참 벗어난 선택을 했을까. 그것은 10여 년간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무기력과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이 혼자 짓고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생각뿐인 공부에서 벗어나 몸으로 스스로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공부를 해왔던 것도 무엇이 되기 위해 한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통념에서 벗어나기도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그 무엇도 할 수 있었고, 과감히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목수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저자가 갖고 있는 삶의 철학에서 나온다. 그는 인생은 계획 중에 벌어지는 일 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예상치 못한 순간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루고, 우리는 그때마다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의 삶은 과거에 했던 무수한 선택의 결과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 고전이고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중국 유학 시절, 고전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고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의 삶을 이끄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공부가 있었기에 지금처럼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목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과 그보다 과거의 경험들을 사서(四書)와 노장(老莊) 등의 동양고전 속 문장들로 풀이한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문학자가 스스로 삶의 철학을 세워 나가는 기록의 흔적이다. 얼핏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목공과 인문학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 안의 이야기들을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해가는 일은 인문학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또한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삶의 현장과 직접 부딪치며 만들어가는 ‘현장의 인문학’이라 할 만하다.
서문: 인생미정人生未定, 나도 내가 목수가 될 줄 몰랐다! 5
1막 삶의 재료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1장 춘재와 추재- 그 순간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충실하라 15
2장 경첩 경첩을- 달았으면 문을 열어라 31
3장 자투리- 어떻게 보느냐가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한다 43
4장 무늬목- 포장으로 속을 감추려 하지 마라. 대신 속을 키워라 55
5장 가죽나무-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면 새로운 생각을 해라 71
6장 집성목- 우리는 모두 조금 모자라다 83
2막 삶을 바꾸는 공구들
방황,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1장 분도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97
2장 톱- 그 길을 알고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라 113
3장 비트-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127
4장 루터테이블- 실수를 통해 배워라. 실수는 스승이다 141
5장 직각자- 직각은 모두에게 직각이어야 한다 155
6장 대패- 껍질을 까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라 171
3막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
가구에는 완성이 있어도 인생에 완성은 없다
1장 디자인-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다를 뿐 틀리지 않다 187
2장 의자- 네 안에 그것이 있다 201
3장 원-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 213
4장 샌딩- 겪을 것은 겪어야 한다 225
5장 오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239
6장 목공-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삶 253